나전칠기의 역사는 낙랑시대부터 시작된다. 현재 우리 박물관에는 고려시대 만들어진 나전칠기 제품들이 다수 전시되어 있다. 그 중에는 자개를 대신하여 거북등껍질로 만들어진 보석함, 자경대 같은 소품이 왕실에서 사용한 것으로 알려져있다.
나전칠기 제품이 일반적으로 보편화된 시기는 임진왜란때 삼도수군통재사로 부임하신 이순신 장군께서 통영에 13공방을 두면서 일반서민들도 나전칠기 제품을 가까이서 접할 수 있으면서 통영이 나전칠기 제품의 생산지가 된 동기는 남해안의 맑은 물에서 생산되는 전복껍질로 그 색깔이 오색영롱하여 검은 칠 바탕에 아주 잘 어우러져 고급가구를 많이 생산하게 되었다.
60년대 초부터는 서양문화의 유입으로 지금의 자개장농 같은 큰 장농을 만들다 보니 우리의 전복껍질로는 넓은 면적을 채울 수가 없어 동남아시아 연안 국가에서 생산되는 큰 고동 껍질과 큰 조개 껍질을 수입하여 사용하게 되었다. 그러나 현재는 태평양 연안 국가들도 큰 고동과 큰 조개껍질이 오염과 무분별한 채취로 인해 거의 고갈상태다. 그러므로 현재 우리 가정 안방에서 사랑받고 있는 자개장농은 더이상 생산이 어렵다. 또 기능인도 없다.
80년대 초부터는 이 기술을 배우려고 하는 젊은이가 없어 나전칠기가구는 명맥을 유지하기조차 힘들다. 그러므로 현재 우리가 가지고 있는 자개장농은 거의가 20년~35년 정도된 장농들이다. 잘만 수리하면 반영구적으로 사용할 수 있으므로 가급적이면 수리하여 보관사용 하는게 좋다. 수천만원을 호가하는 제품이 수두룩한 자개장을 사소한 하자나 유행에 뒤진다는 이유로 버릴 수도 없는 상황에서 완전히 새것으로 만들어 주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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